<p></p><br /><br />[앵커]<br>소설이 원작인 이 미국 드라마 제목이 ‘파친코’지요.<br><br>직업을 구할 때 차별 받던 재일 조선인들에게 천대 받던 파친코, 도박 사업은 생계를 지킬 마지막 보루가 됐습니다.<br> <br> 역사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데요.<br><br><세계를 가다> 김민지 도쿄 특파원이 그 주인공들을 만났습니다.<br><br>[리포트]<br>"제가 밤낮으로 일해서 손톱이 다 부러지고…" <br> <br> 일제 강점기 현해탄을 건넌 뒤 '파친코'를 통해 터전을 일군 자이니치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드라마입니다.<br> <br> 실제 1917년 오사카에서 강제 노동에 동원된 김순차 씨의 아버지도 전쟁 뒤 마땅한 일거리가 없었습니다. <br> <br>[김순차 / 파친코 사장·자이니치 2세] <br>"아침저녁 스웨터 짜기를 해서 음식점도 했는데 잘 안됐고 친척 아저씨가 하는 파친코에서 아버지가 보고 배우셨어요." <br> <br> 일본인들이 천대했던 파친코 장사로 겨우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. <br> <br> 조센진이라고 멸시 받던 어린 시절 기억이 또렷하지만 김 씨에게는 파친코가 '가족'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. <br> <br>[김순차 / 파친코 사장·자이니치 2세] <br>"(예전에는 구슬이) 쌓인 것을 다시 부어야 했어요. <전부 직접 해야만 했나요?> 그렇지 않으면 기계가 멈춰버리니까요." <br><br>한 때 일본에서 파친코 사업은 자동차 산업과 맞먹을 정도였는데요.<br> <br>지금은 코로나 등 경기악화로 그 규모가 반 정도 줄었습니다. <br><br>[김순차 / 파친코 사장·자이니치 2세] <br>"(파친코를 운영하는 자이니치는) 70% 정도입니다. 일본에 살고 싶어 산 것이 아니라 살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이니치에게 파친코는 상징적인 것이죠." <br><br> 자이니치는 현재 44만 여 명입니다. <br> <br> 파친코 운영 말고도 이곳에서처럼 소와 돼지의 내장, 호르몬을 요리해 생업을 이어갔습니다. <br> <br> 이런 자이니치 커뮤니티 주변으로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했습니다. <br><br>"도망쳐! 위험해!" <br> <br> '한국이 싫다'며 교토에 있는 우토로 마을에 20대 일본 남성이 불을 지른 겁니다. <br> <br>[정우경 / 우토로 거주자·자이니치 2세] <br>"불티가 우리 집까지 날아 와서 물을 뿌렸어요. 위에 방충망이 다 타버렸어요." <br> <br> 1941년 비행장 건설에 강제 동원됐던 자이니치가 모여 살던 우토로 마을. <br><br> 오랜 시간 차별을 넘어 거주권을 인정 받았고<br><br> [현장음] "하나, 둘, 셋"<br><br> 화합을 기원하며 평화 기념관도 열었습니다. <br> <br>[한금범 / 우토로 주민·자이니치 2세] <br>"차별로 고립됐던 우토로가 계속 싸워가면서 이렇게 좋은 기념관이 생겨 정말 좋습니다." <br> <br> 우리 땅에선 일본인, 일본에선 한국인으로 차별 받아온 '자이니치' <br> <br> 이제 더 이상 숨지않고 끈질긴 생활력과 유산을 대물림하고 있습니다. <br> <br>[김수환 / 우토로 민간기금재단 이사·자이니치 3세] <br>"(자이니치의 힘은) 차별에도 당당히 살아왔던 실천의 역사입니다." <br> <br>[박소희 / 드라마 '파친코' 배우·자이니치 3세] <br>"미투·갑질을 소리 높여 말해 사회가 변하는 시대지 않습니까. 숨겨야만 했던 비극의 시대는 끝났어요. 이제 자이니치가 나설 차례입니다." <br> <br>교토에서 채널A 뉴스 김민지입니다.<br><br> 김민지 교토 특파원<br> <br>영상취재: 박용준 <br>영상편집: 방성재